정림사지 발굴조사
사비시대 수도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정림사!
정림사지 발굴조사를 소개합니다.
1. 1915년 고적조사
1915년 일제는 조선총독부 산하에 고적조사위원회를 설립하고 고적조사 5개년 사업을 실시하였다. 조사대상으로 석불좌상과 정림사지오층석탑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당시 보고서에는 동남리석조여래좌상 속칭 소정방상으로 기록하였다.
2. 1945년 고적조사
정림사지는 1942년 총독부박물관의 후지사와 카츠오(藤澤一夫)에 의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시의 발굴은 중문지와 금당지는 전면 발굴을 실시하였고 강당지는 주로 적심석의 위치만 확인한 부분 발굴에 그쳤다.
조사 결과 정림사지는 남북축선상에 중문·석탑·금당·강당을 일직선으로 배치하고 주위에 회랑을 두른 1탑 1금당식의 가람배치인 백제시대의 사찰로 밝혀졌다.
백제의 서울이었던 충남 부여의 부소산 일대에 대한 발굴이 시작되다.
6월 3일에 백제시대 궁전벽화가 발견되고 6일에는 새로운 백제시대 왕궁지와 기타 유물들이 발견되다. 이어 9월 중순에는 대가람지가 발견되다. 그리고 10월 초순에는 소위 평제탑 부근에 대한 발굴이 계속되어 대가람의 사지가 확인되고 법당지에서 ‘大平八年戊辰 定林寺大藏當草’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다.
- 「일본침략下 한국사 36년사」 1942년 기록
3. 1979년 발굴조사
1979~1980년, 1983~1984년에 걸쳐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정림사지의 윤곽을 확인하였다. 정림사지의 주요 건물배치는 남북을 기본 축으로 하여 2개의 연못과 남문·중문·석탑·금당·강당지가 일직선상에 건립되어 있으며 건물들을 회랑으로 감싸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정림사지의 대지는 북동에서 남서로 경사진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높은 북동쪽은 깍고, 낮은 서남쪽은 성토하여 조성하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정심사지 사역의 남편과 서편은 원래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는데, 사역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낮아 사찰의 위용이 한껏 과시되었을 것이다.
정림사지의 고고학적 조사 결과 백제시대의 중문, 금당지, 강당지 및 그 북·동·서편의 승방지, 회랑지 등이 확인되었다. 그 배치 평면과 같은데, 이러한 회랑에 접속된 북·동·서 승방지의 배치는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독특한 모습으로 백제지역에서만 나타난다. 사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은 예불대상이 되는 불상이 안치되는 금당과 부처의 사리가 봉안되는 탑이다.
탑과 금당간의 관계에 따라 <1탑-1금당>, <1탑-2금당> 등의 가람배치양식을 구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림사지는 강당과 승방지, 그리고 회랑으로 둘러진 공간 내에 탑과 금당을 일직선상에 배열하는 <1탑-1금당>의 전형적인 백제시대의 사찰터로서, 각 건물들은 기와로 쌓은 기단 위에 건축 된 목조의 기와 건물이었음이 밝혀졌다. 전체 사찰지의 규모는 북승방지에서 중문지까지 107m이며, 폭은 동서건물지외곽 기준으로 62m이다. 두개의 연못지가 중문지 남쪽에서 발굴되었다.
4. 1984년 연지 발굴조사
1984년 발굴 당시의 지면에서 4m를 넘는 깊은 지하에 위치하고 있어서 유적에 대한 발굴 보다 상부에 퇴적된 토층을 제거하기 위한 인력이 많이 소비되었다고 한다. 정림사지 연지는 자연적으로 유입된 토사에 의해 매몰되었으며 백제패망 후 얼마 되지 않아 폐허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지 내부에서 탄화된 연꽃의 줄기와 잎 등이 확인되었다.
동측 연지 15.3m, 남북 11m, 장방형
서측 연지 11.2m, 남북 11m, 정방형
5. 2008년 ~ 2010년 발굴조사
2008~2009년 조사에서는 백제시대 강당동서너비 40m, 남북길이 16m, 회랑지, 석축배수로와 강당지 서편으로 별도의 건물지 공방관련 유구, 고려시대 금당지, 중문지 등 정림사의 가람배치 전모가 드러났다. 이를 통해 강당지 좌우에 부속 건물지가 강당지와 나란히 위치하고, 부속 건물지 남쪽으로 와적기단의 회랑이 배치되는 가람구조인 것이 드러났다. 사역규모는 동서 폭 최대 62m 부속건물지 외각, 동서 최소 50.4m 회랑지 외각이며 남북 길이 91m로 추정된다.
2010년에는 현 보호각 북편의 동편일대에서 백제시대 정림사유구인 북승방지, 배수로, 축대, 고려시대 정림사관련 적심석군이 확인되었다. 금당지와 탑지사이에서는 창건 이전 성 토층 하부의 목탄층이 확인되어 창건 이전의 생활면을 알 수 있었다. 출토유물은 수대隨代로 추정되는 중국 자기, 백제시대 벼루·기와, 청동기시대 무문토기편 등이 있다.